[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니 바람이 불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앞으로 걷고 있어도 뒤를 자꾸 돌아다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주운 나뭇가지로 버티며 걷고 있다. 계단이 된 나무 뿌리를 딛고 오르지만 정상은 숲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나뭇잎을 따서 책갈피에 끼운다. 바람에 넘어가는 책장을 고정하려고 길고 뾰족한 잎으로 읽고 있는 페이지를 고정해 놓는다. 한 문장 한 문장 머리에 담고, 가슴에 품고, 기억해내고, 소리내 읽는다.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시간 속에 머물며 걷고 있다. 발자국 소리가 사라진 숲속에선 사람의 기척보다 어울리는 새소리가 들린다. 잎사귀 자라는 소리도 들리고, 땅속으로 파고드는 뿌리 뻗는 소리도 들리는 듯 다정하다. 한없이 깊은 숲으로, 하늘이 가까워지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행복을 보이는 조건으로 따지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느낄 즈음 낮고 초라함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기쁨의 광맥을 캐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경외와 존경의 눈빛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라도 늘 행복만 일만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늘 불행한 일만 일어나지도 않는다. 늘 불행이 자기 운명인 양 불행 속에서 깨어나고 잠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불행을 행복으로 가는 디딤돌로 여겨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소망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지난 겨울 찬바람에 소나무 가지 휘청였던 눈발과 함께 깊은 불면과 통증으로 숨을 몰아쉬며 견디었던 날들도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는 말대로 꽃피는 봄을 지나며 두번째 시집을 출간한 후 뒤란의 눈 녹듯 사라지고 있다. 행여 다시 시작될 지 모르는 통증은 가을 하늘로 날려 보내야겠지. 다신 품 안으로 안으면 안되겠지. 나를 지나 멀어지는 모든 것들에게 절망 하지 말아야겠지. 내려 놓아야 할 것은 내려 놓아야 하고, 떠나 보내야 할 것은 보내야 하기에 다만 그들에게 축복의 말을 잊지 말아야겠지.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삶을 살아 가기를 바랄 뿐, 잊혀 질 때까지 느리게 아파오는 통증은 바람에 천천히 지워지는 구름이 되겠지. (시인, 화가) 내게 주어진 시간 마음에 마음이 포개질 땐 빛나는 보석이었지 / 물결과 물결이 부딪칠 때 영롱히 솟아난 방울이었지 // 눈물이 말라가던 날이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빛을 잃어가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 물소리 같이 지나가던 날 /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무너지던 날이면 / 물방울처럼 슬픔이 솟아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 피어 오르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을 알면서도 / 영원할 것 같이 움켜 쥐었던 날들이 잦아들면 / 숲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무심히 스쳐 가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 잔잔한 비가 호수에 뿌려질 때 / 하늘 푸르름에 풀꽃이 기지개를 펼 때 / 별빛 내려와 서늘한 언덕의 등을 어루만질 때 / 당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친 허리를 세울 때 // 입술의 달콤함이 쓴맛으로 변할지라도 / 풀숲을 지나 하늘을 향해 갑니다 / 하늘 아래 서 있겠습니다 / 받은 것을 돌려드려야 할 시간 / 당신 눈에 비친 말들을 써내려 가야 할 시간 / 이방인의 뜰에서 눈물을 닦아야 할 시간 / 내 것이 아닌 당신의 것이 되어야 할 시간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마음 하늘 푸르름 가을 하늘